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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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구실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글쓰기 2022. 1. 1. 23:21
새해다. '고생했어' 보다는 '잘 좀 하지' 라는 마음이 더 드는 연말이었다.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지만 그래도 스터디카페를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괜스레 울적해졌다. TV 속 시상식 끝무렵에 신동엽씨의 재치있는 진행과 함께 우리가족은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사실 그거 뭣하러 하냐고 세안이나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려 했으나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셋, 둘, 하나, 우리가족 화이팅!!!!" 어머니 아버지와 손을 마주잡고 있다가 위로 들어올렸다. 아버지는 머쓱한듯 껄껄 웃으셨고, 나는 얼른 세안을 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취준생이라는게 참 쉽지는 않다. 벌써 꽤 오랜 기간을 취준생으로 지낸다. 그러다보니 사고의 과정이 부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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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의 기록들 1)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1. 6. 28. 23:55
요즘 밥이 참 맛있다. ‘요즘’이라는 단어를 생략해도 될 정도로 평소에도 잘 먹는 나지만, 기꺼이 생략하지 않음에는 좀 더 ‘깊은 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생활을 했기에 가족끼리 다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꽤나 기념적인 행사였다. 사회복무요원 기간 동안 집에 머물기는 했지만 그 때는 누나가 타지에 있었다. 그래서 네 명이 완전히 모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는 거의 모든 끼니를 다 같이 먹었다. 특별한 의도로 그러한 것은 아니고, 시기가 맞물렸다. 솔직히 불편한 점도 많지만 언제 또 이런 시기가 올 수 있을까? 당장 8월이면 누나는 타지에서의 공무원 생활이 시작되어 밥상의 수저 하나가 줄어들 것이다. 밥상에 놓여지는 네 개의 수저가 함께 춤추는 저녁 6시 반.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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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는 밥이다.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10. 28. 01:24
오만한 제목. '어디 얼마나 잘 쓰는지 보자'라며 팔짱끼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극적인 제목이 1차적 경쟁력이 되는 이 시대에 '나름 배짱이 두둑한 놈이네' 정도의 시선으로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한다. 오늘의 글은 내 글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넌 어떻게 글을 잘 쓰니?'',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 포스팅해주면 좋겠다.''라고 요청해서 쓰게 되었다. 얼굴이 많이 빨개진다. 제목만큼이나 오만한 글이 탄생할 것만 같아서 비밀글로 설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원래는 ''내가 아직 너무 부족해서 그 주제를 다루기는 힘들 것 같다''라며 거절했었다. 그러나 그 요청은 진심이 담겨 있었고, 나의 작은 부분이라도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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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마워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글쓰기 2020. 10. 13. 23:46
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김성호 쉽지 않았을 거다 꾸역꾸역 삼켜낸 하루의 힘듦을 입 밖으로 다시 토해내는 것 썩기보단 곪아버린 토사물의 모습에 나도 처음에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너는 부끄러움보다 힘듦이 더 무거웠나보다 오늘도 기꺼이 힘들다고 말해주는 너의 용기에 그제서야 네가 보인다 마음 같아선 너의 토사물에 귀를 기울이고 너의 토사물에 손을 담그고 너의 토사물에서 헤엄이라도 치고 싶지만 그저 등 두드려 주고 다 게워내면 따뜻한 물 한잔 떠다줄게 힘들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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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10. 9. 23:16
많은 사람들이 부는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니 어지럽고 불안하다. 하지만 갈대는 이리저리 흔들려도 결코 뽑히지 않는다. 내진설계는 어떠한가. 내진설계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로 '내진구조'는 튼튼히 강직하게 짓는 것이다. 이 구조는 작은 충격에는 미동도 없지만 큰 충격을 버틸수 없는 구조이다. 오히려 큰 충격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다른 방법인 '면진구조', '제진구조'이다. 이들은 강인함보다는 유연함을 택했다. 뽑히지 않기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인함보다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흔들리고 있다면 강인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말자. 흔들릴수 있는 유연함을 갖춘 자신을 아껴주고 응원해주자. 뽑히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 포인트는 아니다. '나는 무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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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을 생각하며 쓴 글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10. 6. 00:12
나의 애인이 좋다. 첫 문장을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컴퓨터로 작성중이라 다행이지 연필로 썼으면 지우개똥이 벌써 한가득일 뻔 했다. 항상 글을 쓸 때면 메모장을 먼저 찾는다. 예전에 적어두었던 짧은 생각들을 조금 더 확장해서 글을 쓴다. 오늘도 무엇을 쓸지 쭉 살펴보다가 최근에 적어놓은 기록들이 대부분 나의 애인과의 대화 속에서 발췌되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쓰려고 한다. 평소에는 거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애인'이라는 호칭으로 쓰려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새롭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 오히려 다른사람에게 굳이 다가가지 않았던 것 같다. 표면적인 대화만으로도 원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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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尙尙)은 현실을 바꾸고도 남는다.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10. 5. 00:12
'오히려 상(尙)' 최근에 한국사 인강을 듣다가 알게 된 한자이다. 함께 알게 된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1. '금신전선 상유십이' 한자로 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가 흔히 들어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말의 원본문장이다. 여기서 '상' 은 '오히려 상' 이라는 한자이다. 그래서 '신에게는 아직'이 아니라 '신에게는 오히려'라고 해석해야 더 정확하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아직'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면 조금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질 확률이 높지만 후회 없이 끝까지 해보려고 노력하는 의지 정도? 하지만 '오히려'라는 단어는 '해 볼만 한데?'의 느낌이 더 강하다. '아직'이라는 단어의 뒤에는 '곧', '조만간'이 따라온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