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의 끝에 기대어 앉아서 :: 행동버섯 (원산지: 자연산)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힘든 하루의 끝에 기대어 앉아서
    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일상 2018. 11. 12. 00:39

    바쁜 하루였다.


    인천 을왕리에서 시작한 하루는 사당, 신설동을 지나 내 자취방이 있는 회기역에서 잠시 멈추었고,

    곧이어 부모님이 살고 계신 춘천으로 가서 할 일들만 빠르게 하고 다시 내 자취방으로 왔다.


    장소간의 이동에 승합차, 기차, 지하철들을 이용하며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대외활동 엠티도 가고, 카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대리점에서 핸드폰도 바꾸었으며, 부모님과의 식사 및 교감도 있었다.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매듭지었기에 평소같았으면 집에 돌아오며 '알찬 하루였다'라고 뿌듯해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나는 언제 눈물을 흘렸었나 기억을 돌이켜본다. 기쁠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감격스러울 때, 미안할 때, 감동적일 때, 아플 때...  내 감정의 역사를 뒤적여봐도 지금의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하루의 마지막 즈음 일정이었던 친구들과의 회의 시간을 내가 지키지 못했는데, 기차와 지하철을 환승하며 이동하다가 시간이 틀어져서 늦게 되었다. 그러자 들어보기만 했을 뿐 남 일이라고 생각했던 공황장애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 될 정도의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식은 땀이 마구 흐르고, 손이 조금 떨리며 심장이 계속 쿵쾅대서 옆사람의 일반적인 통화 소리가 몹시 큰 소음으로 불쾌하게 다가왔다.


    이런 나에게 놀란 나를 '피곤해서 그런거야.', '어제 술을 마셔서', '방금 마신 커피가', '땀은 원래 많았잖아'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자취방까지 겨우 도착해서 침대에 기대어 앉자마자 눈물이 난 것이다.


    잠시 앉아 있다가 식은 땀들을 닦아내고,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이성적인 사고의 불이 켜졌다. 그리고 이렇게 포스팅을 하며 내 스스로의 감정의 정처에 대해 정리해본다.


    절대 반갑지 않았던 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평소에 스스로 굉장히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감정의 동요와는 조금 다르다. 위에 말한 눈물이 흐르게 하는 요소들에 해당하는 상황이 있을 때 눈물을 흘릴지라도 그것이 나의 정서를 엄청나게 뒤흔들지는 않았다. 또한 외부의 요인들에 의하여 쉽게 화를 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분석해보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내는 회로는 조금 무뎌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위처럼 나의 멘탈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어쩌면 틀릴 수도 있었음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인정한 것일까. 내가 원했던 내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의 고무줄이 계속 늘어나다가 마침내 끊어진 것일까.


    위에 언급한 내 눈물을 이끌어내는 상황들의 공통점은 그 감정들에 대해 거짓 없이 발가벗었을 때였다. 그 감정에 대해서 솔직해도 된다고 스스로 허락해줄 때였다. 어쩌면 오늘 새로운 요소에 대하여 스스로 허락해 준 것 같다.




    사실 아직 한 줄의 말로 정확히 그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나다. 하지만 그 감정의 존재와 어디쯤에 위치해있는 지 대략 알았으니까 아까처럼 다시 그 상황을 마주해도 이번엔 무서움과 두려움이 아니라 담담함과 궁금함으로 다가가봐야겠다.


    슬픔과 미움으로 인해서 오는 눈물은 아프다. 반대로 기쁨과 감격스러움에서 오는 눈물은 달다. 오늘 흘린 눈물의 맛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프든 달든 소중한 나의 감정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가가봐야겠다.


    나의 떨렸던 손은 설레임이었고, 불편하게만 들렸던 주변의 소음들은 장미를 숨긴 가시였기를 내심 바래본다.


    이 포스팅이 하루의 끝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잠깐이라도 기대어 앉을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