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온지도 대략 한 달이 되어간다.
과거 무려 군대에 훈련소에서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생각한 나는 핀란드에 가는 것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이 있었다.
훈련소에서 불침번을 설 때의 2시간은 영겁의 시간이 이런 것이구나 싶게 느껴진다. 그 시간을 잘 때우고자 잡새각을 하곤 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한다. 그때 가장 먼저 세웠던 계획은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간다"였다.
교육에 항상 관심이 많고 핀란드에서 교육에 대해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대에서 2년, 영어 점수에 6개월을, 기다림 6개월을 통해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핀란드에 있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것 때문일까? 나는 교환학생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대가 컸다기보다 나라는 사람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1. 몸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서양인이 체격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양인이 식단 상 고기를 많이 먹으니 나도 여기에 오면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먹고 갑자기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고 나니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생각인지 알겠다.
어디서부터 말이 안 되었던 생각인지 조목조목 따져보자.
1) "서양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참 차별적이다. 세상에 절반이 서양인인데 그 많은 사람을 "서양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하다니. 그러나 과거에 내가 가졌던 생각이니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저런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누군가가 나를 그저 "동양인"으로 칭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다만 이 글에서만 과거의 부끄러운 나의 생각을 짚기 위해 "서양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겠다.
2) 체격은 큰 차이 없다. 나는 무조건 "서양인"은 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아니다. 똑같다. 내 주변 친구들 중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한 가지의 운동 정도는 한다. 한국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중에는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 아 그래도 확실히 평균적으로 키는 여기가 더 크다.
3) 그럼 대체 왜 "서양인"이 몸짱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서양인"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접했다. 당연히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은 몸이 좋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한국인들 역시 몸은 좋다. 엄청 잘생겼다. 미디어를 통해 무언가에 대한 인상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편협하다.
2. 영어를 갑자기 잘해지지 않을까?
둘째로, 갑자기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수업을 영어로 하고, 잡담도 영어로 하고,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영어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생각하게 되고, 영어가 쉽게 쉽게 튀어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실력이 느는 것 같진 않다. 그냥 내가 가진 자원을 조금 더 잘 활용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 단어를 듣고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눈치가 는다.
쓰는 단어가 제한적이다. 현재 딱 스몰 톡에서 나올만한 단어들은 구사할 수 있다. 심지어 들리는 단어도 제한적이다. 전체 맥락에서 아는 단어를 통해 대략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안 들리는 영어단어는 그냥 계속 안 들린다.
3. 갑자기 글을 잘 쓰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좋은 소재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기 오니 좋은 소재들은 많은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좋은 소재를 읽기 좋게 가공하여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고, 심지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확실히 글을 예전보다 좀 더 열심히,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기대처럼 갑자기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그들이 내 글에 영향을 받진 않는다. 그저 새로운 소재에 잠시 흥미로워할 뿐이다.
4. 역시 그냥 바뀌는 것은 없다.
결국 깨달은 것은 그냥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냥 몸이 좋아지지 않고, 영어 실력이 늘지도 않으며 글을 잘 쓸 수도 없다.
내가 핀란드에 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방 사진, 한국과 다를 게 없다.
창문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내 방 창문
친구들이 조금 다르다.
등교길이 제법 다르다.
그냥 그 정도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몸이 좋아지지도 않으며, 영어실력이 늘지도 않고, 필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몸이 좋아지려면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고
영어실력이 늘려면 짜증 나도 단어를 외우고, 쉐도잉을 하거나 영어책을 읽어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고, 내가 쓴 글을 거듭 수정해야 한다.
항상 몸이 좋아졌으면 싶고, 영어실력과 필력이 늘었으면 하지만, 그 과정은 귀찮고 피곤하다. 그러나 뭐든 그냥 바뀌는 것은 없다. 심지어 환경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해도 말이다. 결국 내가 뭘 하고 싶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한동한 글도 안 쓰다가 다시 글을 쓰는 것이다. 다음 주까지 읽어야 할 영어 아티클도 오늘은 꼭 읽을 것이다. 밥 먹고 헬스장도 가야겠다.
그래서 한 6개월 이렇게 지내다 보면 6개월 전보다는 "갑자기"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