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외국이니 당연히 영어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나는 당연히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편하다. 영어를 통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보다는 한국어를 통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분명히 한국어로 소통하기가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어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오울루 교환학생들의 첫인사.
(사실 핀란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1) 악수를 한다. 서로 이름과 국가를 말한다.
2) 전공과 어디 사는지 묻는다.
3) 정해지지 않는다. 핀란드에서 수업은 어떤지 공유한다.
2. 한국에서의 첫인사
1) 목례를 하고 이름과 나이를 말한다. (대학의 경우 학번)
2) 전공과 출신 학교를 소개한다.
3) 정해지지 않는다. 같이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3. 차이점.
한국에서는 악수를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곳에서는 항상 인사를 할 때 악수를 한다. 친근하다.
사실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나이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곳에 와서 친구를 처음 만날 때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이 바로 나이에 대한 부분이다.
4. 이곳에서의 나이
그러나 내가 경험하는 사회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친구가 되고 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를 묻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첫 만남에서 나이를 묻진 않았다. 나이는 그냥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친구를 만나서 놀다 보면 궁금해져서 그 친구의 키를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 키가 몇이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지진 않는다. 나보다 키가 큰 친구도 있을 것이고 작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며칠 지나면 까먹는다. 크게 중요한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키와 같은 것 같다. 그냥 나를 이루는 하나의 특징이다. 지내다 보니 이야기가 나와서 나이를 묻는다. 그리곤 까먹는다. 나는 핀란드에서 만난 친구들의 나이를 전혀 모른다. 대부분 물어본 적도 없고, 물어본 경우에도 금세 잊었다.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렌터카를 빌릴 때 나이에 따라 보험금의 가격이 달라서 나이를 물어본 것이었다.)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35살이다. 처음에 인사를 하고 약 1주일이 지난 이후에 알았다. 외국인이라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한국에서도 35살인 사람과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5. 한국에서의 나이
그러나 한국에서는 나이가 중요하다. 사실 아주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첫 만남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당연히 이어서 바로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이 나뉜다. 그로 인해서 동갑이 아니고서는 친구가 되기 힘들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손윗사람이 결정되는 순간 그 둘을 진정하게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안 그래도 나와 관심사도 잘 맞고 코드도 잘 맞는 친구 만들기가 힘든데 거기에 나이까지 같아야 하니 한국에선 더더욱 친구 만들기가 참 힘들다.
한국에선 절대 나이를 잊을 수 없다. 적어도 나를 기준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금세 예의 없는 사람이 되곤 한다.
6. 하고 싶은 말
한국에도 제발 나이를 소개하는 문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에 1년 먼저 들어온 나는 동기들보다 1살 어렸다.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나보다 한 살 형이었다. 그때 당시엔 그것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 이유로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즉, 존댓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존댓말이 싫다. 분명히 도덕 시간엔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다. 그러나 왜 나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람을 수직적으로 나열하는 것일까.
존댓말이 싫고 반말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너무 싫다. 한쪽은 존댓말을 하고 한쪽은 반말을 하는 것이 너무 싫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 있다는 것을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을 통해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배운다.
영어는 모든 말이 존댓말이라고 한다. 반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방식인 것 같다.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둘 중 하나를 정해 통일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친구를 사귀기도 편할 것이고,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는 "갑질"의 감소에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정도 올려놓는 격은 될 것이라고 본다.
한 방향에서는 존댓말을 하고 다른 방향에서는 반말을 하는 소통에서 오는 장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혹시 그에 대한 장점이 있다면 누군가 내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7. 현실적 대안
당연히 당장에 이 모든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 대안은 대한민국식 나이를 그만 사용하고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나이 문화는 상당히 특이하다.
1월 1일 새해가 밝으면 모두가 동시에 나이를 한 번에 같이 먹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이 개념이다. 전 세계에서는 모두 자신의 생일이 되면 나이를 먹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
그래서 핀란드에 와서 친구들이 나이를 물을 때 헷갈렸다. 한국 나이로는 24살인데, 만 나이로 22살인지 23살인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22살이 맞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조차 공식적인 서류나 신문 등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도 한국식 나이는 폐지했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식 나이를 사회문화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되면 어떤 차이가 생기는가? 상대적으로 나이에 따른 구분이 덜 엄격해진다.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면 절대 나이가 모호해질 이유가 없다. 태어난 생년에 따라서 아주 엄격하게 구분된다. (이마저 빠른 년생 때문에 모호하긴 하다. 이 모호성 때문에 대부분 빠른 년생의 친구들은 조금 더 나이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되면 시기에 따라 동갑이었다 나이가 한 살 많았다 변동이 조금 생긴다. 친구들끼리 나이가 조금씩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한 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나면 그 보다 더 넓은 나이 차이도 더 모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나이 82살 먹고 28살 먹은 친구 하나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그를 위해 나름 노력하는 중이다.
다분히 나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다. 나름대로 대수의 법칙이 넘는 것을 일반화하려고 노력했다.
성급한 일반화는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한 "덜 성급한 일반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