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을 입에 물고. :: 행동버섯 (원산지: 자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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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칫솔을 입에 물고.
    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9. 14. 00:11

     

     

      꼭 치약을 짜고 나면

     

      기발한 생각들이 번득인다. 손에 물도 묻었고, 이미 어금니를 치약으로 두어번 문지른 상태다.

      '이거 글로 쓰면 기가 막히겠는데?' 싶지만 경쾌한 잇솔질은 입안의 찌꺼기와 함께 아이디어도 닦아낸다. 이렇게 놓친 생각들만 해도 20개는 될 것이다. 그나마 양치는 양반이다. 샤워할 때 떠오른 아이디어는 어차피 샤워 후에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흘려보낸 적이 많다.

     

      유레카는 습관으로부터 기인된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목욕탕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때가 불은 상태로 밖에 나갈 수는 없으니 불린 때를 씻어내고, 온 김에 머리도 감고, 양치까지 하고 구운달걀까지 하나 먹고 나왔을 것 같다.

      그리고는 ''아까 뭐 생각 났었는데, 뭐더라...''

      처음부터 목욕탕을 뛰어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습관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양치 중에 나와 보았다.

     

      운 좋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글 쓰는 것에 다시 재미가 붙었다. 순간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글이, 적어도 좋은 문장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재미를 알았다. 그리고 그 재미는 습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양치 도중에 칫솔을 입에 문채로 나와서 노트북을 열고 메모를 남겼다. 아래 사진의 스티커메모가 그 흔적이다.

     

     

      한 가지 실망할 수도 있는 것은 양치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그 메모를 읽어보고, 조금 구체화해보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책상에서와 다르게 양치 중에는 상상의 제한선이 풀린다. 타당성? 논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을 따질 여유도 없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생각인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모한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50배 커지는 공룡

     

      초등학교 때 굉장히 충격적인 기억이 있다. 학교 앞 200원짜리 뽑기에서 뽑은 500원짜리만한 연두색 공룡을 물에 담가놓았더니 어른 팔뚝만한 공룡이 되어 있었다. 나는 메모에도 충분히 그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습관이 되면 정말 노력 대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단지 물에 담가놓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단지 메모장에 쓰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이 훨씬 구체화되고, 살이 붙는다.

     

      아직까지 나는 목욕탕에서 뛰쳐나올 정도의 용기는 없다. 하지만 양치 중에 뛰쳐나온 이 즐거운 경험과 그 결과가 샤워중에도, 나중에는 목욕탕에서도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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