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에세이 :: 행동버섯 (원산지: 자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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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에세이
    공감버섯 (연,蓮) 의 농장/서평 2019. 1. 20. 23:59


     


    별생각 없이 서점에 들어갔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죽고는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니,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면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얘기일까?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왜인지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책에는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 우울장애와 달리 경도의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겪는

    작가의 1주 차부터 12주 차까지의 상담 내용이 담겨있다의사의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있어 

    마치 상담 과정을 옆에서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고,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의 양 끝은 이어져 있어서 의존 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작가의 여러 증상을 들은 의사는 의존 성향이 강한 것 같다면서 위와 같은 얘기를 한다. 의사는 어딘가에 의지하면 불만이 가득 쌓이고, 다시 어딘가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면 불안, 공허감을 느끼는 데서 오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제 작년쯤이었나, 한창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기 싫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다. 나조차도 이런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당시 주변 친구들의 그럴 수 있어, 나도 가끔 그래라는 말들을 위안 삼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돌아보면 혼자 있을 때면 

    온갖 걱정의 파도에 휩쓸렸으며 내 기대보다 모자란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럴수록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시간을 보냈지만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마치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 같아요. 마치 어떤 절대적인 기준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처럼요.]


     자신이 가진 많은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이내 그런 자신을 타박한다는 작가에게 의사가 한 말이다

    이후 작가는 자신의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심해져 다른 사람에게 그 잣대를 들이밀지만 정작 쓴소리는 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고 비하한다. 이 부분에서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누군가를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행동 하나하나로써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판단해버린 적이 상당히 많다. 결국 말도 못 할 거면서. 그 뿌리를 생각해보자면 다름 아닌

    아주 강력하고, 나에게 상당한 기대를 가졌으며 누구보다 나를 구박하는데 뛰어난 나의 초자아로 인해 항상 잘 한 것도 

    잘 한 게 아니었고 못하는 경우에는 말도 못 할 정도였으며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느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 또한 감시하게 만들었다.



     

    [저는 문창과를 나왔고 출판사를 다니니깐 예술가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들이랑 온도가 잘 안 맞아요. 제가 너무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예술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만나도 저는 외딴섬에 있는 것 같아요.]


     상당히 공감하고 있는 와중에 작가의 친구 역시 그렇게 느끼며 때로는 자신이 반인반수 같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신기함을 느꼈다고 했다. 동시에 나는 멍해졌다. 나의 전공은 실용음악이다. 소위 말하는 또라이들이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많았다. 여러 해 입시를 준비하고 결국 들어간 학교에서 언제나 나는 이방인과 같았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순종적인 모범생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전공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편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끼와 흥이 넘쳤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비단 예술가라면 이래야지라는 틀에 나를 욱여넣으려 했고 부작용으로 점점 음악이 싫고 위축됐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단지 KTX를 타는 게 목적이라고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요]

     위의 내용과 연관된다. 입학 한 후에야 알았다. 몇 년간 크게 생각했던 목표를 이룬 것은 좋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부랴부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저 모르겠다고만 외쳤다. 그 와중에 웃긴 건 이 악물고 열심히도 다녔다. 어쨌든 성적을 잘 받는 건 언제고 도움이 될 거라고. 사실은 그렇게나마 나의 쓸모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비록 저들과는 다르지만, 저들처럼 다양한 색을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나름대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였겠다. 사실 내가 점점 싫어한 건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적어보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 힘들게도 살았다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나의 경험들이 예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회상할 때마다 괴로웠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지금은 글로 적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유라 하면 인생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아주 감사하게도 좋은 프로그램과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후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라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잘 해야만 하고, 부족한 것은 보이고 싶지 않고, 못한 것은 내가 아니길 바라며 나를 부정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보다 입체적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때 보이는 한 모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마무리하자면,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모두 일면식도 없는 작가 개인의 경험이다. 하지만 두 번 정도 읽으며 참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었고, 같은 이유에서였을지 꽤 오랜 시간 서점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순위에 있는 책을 마주칠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힘든가..하긴 요즘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만큼 꾸밈없이 담담하고 솔직한 이 책을 통해 분명 조용하지만 묵직한 위로를 받기도, 지난날의 나에게는 힘들었겠다며 위로를 건넬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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