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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함에 대하여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글쓰기 2022. 1. 8. 01:02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해서 겨울을 좋아하는 나지만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은 우연찮게 비추인 한 줌의 햇살에 소중함을 느낀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모자에 장갑까지 착용하고 집을 나섰는데 간질간질한 햇살이 모자를 벗겼다. 곧장 스터디 카페로 가기는 아쉬워서 가까운 약사천 산책길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시즈음이었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식사 후에 햇빛을 쬐러 나왔을 그 낯선이들이 괜히 인사라도 건네고 싶을 만큼 반가웠다.
약사천을 걷다가 철봉 풀업(1개도 제대로 못했지만)도 조금 시도해보다가 '이 정도면 괜찮은 산책이었다'라고 만족하며 돌아가려는데 세상에. 찬란함을 마주했다. 윤슬 가득한 물 위에 오리들이 물장구치는 걸 보고 바보처럼 우두커니 한참을 보았다.
찬란하다 : 1) 빛이 번쩍여서 눈부시게 아름답다. 2) 두드러지게 훌륭하다.
평소 잘 쓰는 단어가 아닌데, 오리들을 본 순간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단어 외에는 적절한 단어가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오리들도 지금이 찬란한 순간이라고 느낄까?'
사실 오리들은 그저 일상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을 것이다. 분주히 먹이를 잡고, 헤엄치고, 걷고, 살아남으며 일상의 고단함을 이겨나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내 시선 속 그들은 찬란했다.
한참 오리를 보다보니 수면 위에 비친 내가 보였다. 똑같이 윤슬 가득한 물 위에 떠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찬란한가?
솔직히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찬란함의 기준이 높아져버렸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렸다.
내 자신에게 너무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었고, 오리들을 찬란하게 보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별 거 없었다. 어제의 체기가 완전히 사라진 개운함 한 스푼, 점심식사 후의 포만감 한 스푼, 윤슬의 반짝임 한 스푼. 이 세 스푼으로 그 찬란함의 기원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나에게 선물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멋진 말인데 유독 나에게는 아꼈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오리들처럼 나도 일상 속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바쁘겠지만 우연찮은 한줄기 햇살이 비출때면 분명히 찬란한 오늘임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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