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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하고 보지 않으면 낙서와 다를 바 없다.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글쓰기 2019. 1. 20. 22:19기록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종종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기록으로 남기곤 한다.
주로 지하철을 기다릴 때나 샤워할 때 반딧불이처럼 잠깐 반짝이는 이 생각들은 놓치기엔 꽤 괜찮은 것들도 많다. 그리고 기록의 힘을 나름대로 믿는 편인 본인이기에 메모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 메모들은 일회성의 만족감으로 타버리고 난 뒤 다 쓴 연탄재처럼 방치되곤 했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연탄처럼 그 당시에는 정말 굉장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식어버리면 메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무슨 생각이었는지 헷갈리고 귀찮아져서 삭제해버리곤 했다.
오늘은 우연히 핸드폰 메모장을 보다가 또 다시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세개의 연탄재를 발견했다.
으레 그랬듯 또다시 부서져버릴 연탄재들인가?
오늘은 다르다.
안도현 시인은 말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메모장에 적힌 이 아이디어도 누군가에겐 빙판 위를 무사히 걸어갈 수 있게 해줄 바닥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이 아이디어들을 의미있게 할 것인가?
꽤나 고심이 되는 부분이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크게 두가지 항목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평소에 의식적으로 고민하던 것
2. 평소에 의식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
1번의 경우에는 사실 크게 고민할 것도 없다. 당장 적용시켜보고 그 결과를 확인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2번이다. 예를 들어, 위 사진의 두번째 메모를 보면 '문자를 타임캡슐처럼 미래의 나 또는 타인에게 예약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평소에 이것과 관련하여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낀적도 없는 것 같고, 그렇기에 이 아이디어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하면 어떨까?' 라고 무책임하게 던져진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피드백은 얻을 수 있다. 위에 녹색으로 강조해놓았듯이 '지금 생각해보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메모할 당시의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현재의 나보다 조금은 더 잘 알 것이다. 멍을 때리다가 떠올랐든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떠올랐든 그 당시의 생각은 그 당시의 내가 제일 잘 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메모는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를 짧게나마 기록해놓을 필요가 있다.]
자 이제 다시 위의 녹색 문장에서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낀 적'이라는 부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번과 다르게 의식적으로 고민한 부분이 아니기에 잠깐의 고민으로는 그 필요성을 인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무의식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다. 무의식은 어쩌면 의식의 영역에서는 더이상 해결하기 힘들기에 무의식이 '내가 해결할게!' 하고 고민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 뉴턴, 대중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그런데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와! 이것을 이용해 F=ma라는 공식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꼬박 이삼일을 밤새워서 뚝딱 만들어냈을까? 아르키메데스가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정말 집까지 발가벗고 뛰어왔을까?
이들의 일화는 그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아마 이들도 메모의 귀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메모의 개수가, 메모장의 두께가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내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목욕물은 왜 넘칠까? 얼만큼 넘치는지 측량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라고 메모해 놓은 것과 이전 또는 이후의 메모가 조합되면서 위대한 발명들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2번유형의 메모는 1번유형의 메모 즉, 의식의 수준에서 해결하기 힘들 던 것을 무의식이 생각하고 있다가 툭 튀어나온 실마리일 것이며, 그 실마리들은 하나 하나 낱개로 존재할 때는 그저 실마리이지만 여러개가 되면 그게 실타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실타래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메모를 꾸준히 모으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메모할 것인가?
위의 글에서 두개의 빨간 대괄호가 있다.
1.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를 짧게나마 기록해놓을 필요가 있다.]
2. [메모를 꾸준히 모으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적용하여 메모해야 한다. 특히 2번내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만약 위대한 일들을 해내고 싶다면 메모의 정의를 사전적 정의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는 것' 이 아닌
'적고 모아서 체계화, 항목화 시켜놓는 것'
으로 말이다.
또한 그 '적는 것'의 부분은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즉시 기록해놓아야 한다. 잘 모르겟으면 무슨 일을 하다가 떠올랐는지라도 말이다. 또한 이 부분은 앞으로 메모를 해나가면서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더 피드백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아직 메모의 달인은 전혀 아닐 뿐더러 메모의 초심자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다.
위에 언급했듯 메모의 실효성보다는 그 자체로 뿌듯한 느낌이 좋았다. 뭔가 아이디어뱅크같고, 아직 머리가 잘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뿌듯함으로 태워버리기엔 아까운 연탄들이 아닌가. 더 식어서 연탄재가 되기 전에 잘 모아두고, 사진 속 나의 메모들처럼 이미 연탄재가 되어버렸을지라도 누군가에겐 미끄럼을 막아줄 소중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잘
'메모'(적고 모아서 체계화, 항목화 시켜놓는 것')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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