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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김치같은감성버섯 (호, 昊) 의 농장/에세이 2020. 9. 27. 23:55
그런 것들이 있다.
한 술 떠서 먹어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맛.
뭐 예를 들면, 냉장고 속 멸치볶음 같은 것.
뻔한 단어들로 구성된 칭찬, 위로, 감사.
뭐 이를테면, '축하해', '힘내', '고마워'.
반면에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특제 소스를 넣은 매콤달콤 살벌하기까지한 대창쭈꾸미볶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싶은 현란한 말솜씨, 기막힌 글솜씨.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현란한 말솜씨에 홀린듯 설득된다. 맛있어보이고 멋있어보여서 그것들을 좇아오면서 살았다. 집에서 직접 조미료도 듬뿍 넣어가며 자극적인 음식을 해보기도 하고, 화려한 표현들을 위주로 글을 써보기도 했다. 꽤 맛있었고, 꽤 화려했다.
하지만 조미료는 혀를 점점 무감각하게 했고, 화려한 표현들은 반복되면 더이상 화려하지 않았다. 밖에서 자주 사먹는 사람들이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편,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 술 떠서 먹어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맛으로
항상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워내게 하는 사람.
뻔한 단어들로 구성된 칭찬, 위로, 감사로
나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사람.
침이 고이고, 홀린듯 설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고, 표현이 반복될수록 더 무르익는다.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메뉴, 같은 말인데 이들이 했을 때는 더 울림이 있고, 진심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특징이 뭘까 싶다가도 그것은 따라한다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최고의 방법은 그들을 곁에 두는 것이다. 억지로 따라할 수는 없어도 물들 수는 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니 소중히 생각하며'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몇 주 전에 해준 말이다. 사실 듣자마자 크게 울림이 있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던 말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이 말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그 말을 매일 조금씩 음미하는 중이다. 음미하다보니 상차림 가운데의 갈비찜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소담히 담아놓은 물김치같았다. 메인메뉴는 바뀌어도 항상 자리를 지키는 밑반찬처럼 오늘의 하루를 싹싹 비워낼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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