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종차별 같은 거 신경 안써! :: 행동버섯 (원산지: 자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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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인종차별 같은 거 신경 안써!
    영감버섯 (건,徤) 의 농장/핀란드 오울루 대학 교환학생 2019. 4. 3. 21:34
    나는 인종차별 같은 거 신경 안 써

    상당히 자극적인 발언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법도 한 발언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발언인지 한번 살펴보자.


    필자는 스톡홀름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이다. 핀란드에 있는 교환학생들 중 스톡홀름 여행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ESN이라는 학생회에서 주관한 행사이다. 스톡홀름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전부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1200명의 교환학생이 크루즈 여행을 한다. 당연히 모두가 얼큰하게 취해 있었고, 나 역시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소주를 얻게 되어 친구들과 소주를 먹었다. 그 집단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도 있었고, 몇 분 전에 분명히 인사를 하긴 했는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귀한 소주였지만 한국인의 정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나의 소주를 원하는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한국의 술이고, rice wine 정도로 설명을 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좋았다.

    물과 보드카의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달콤한 향이 나서 멋도 모르고 마시다가 국가기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기분이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그중 한 친구(A)는 이 술이 상당히 인상 깊은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보는 한국인인데, 그 처음 보는 한국인이 처음 보는 한국 술을 공짜로 나눠주었다고 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이곳에서는 친구끼리여도 술을 산다거나 음식을 사는 문화가 없다. 그렇기에 상당히 인상 깊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이게 바로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뭐든지 나눈다! 하면서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발언이 문제였다.

     

    베트남에도 이런 거 있었던 것 같은데 동양인들은 이런 거 마셔서 눈이 옆으로 찢어졌나 봐 ㅋㅋㅋㅋㅋㅋ

    이게 뭔 소리지? 순간 엥 싶었다. 내게 직접 한 말은 아니었고, 본인의 친구(S)에게 한 말이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이 농담에 웃지 않았고, 바로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졌다.

    너 뭐라고 한 거야?

    라고 물었다. 그 친구도 다행히 천치는 아녔기에 분위기를 바로 캐치했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내 친구 S는 내 편을 들어주며 이 발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A에게 말했고, 내게는 "아까도 말했지만 유럽 인들이 이렇게 동양인에 대해서 무지하다. 특히 이렇게 "특별한" 아이들은 정말 뭣도 모르고 실수를 한다." 내게 말해 주었다. A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A에게 그거 인종차별이다, 그러니 사과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고, A는 내게 사과를 했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나름 즐겁게 30분 정도 술을 먹고 있었고, 이 친구도 어찌 됐든 사과를 했으니 계속 자리에 앉아 있으려 했다. 내가 시작했는지 A가 시작했는지 기억은 나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유머라는 이름의 폭력

     

    이후에 대화를 따라가 보자.

    A: 보통 친구들과 있을 때 그냥 이런 류의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때는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고 모두가 웃어.
    필자: (;;???!!??) 유머란 것은 모두가 웃을 수 있을 때 유머이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그 유머에 웃지 못하면 그것은 혐오 발언이 된다. 그렇기에 너의 유머는 당연히 유머가 아니다.
    A: 내가 그것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미안하다. 다음부터 술자리에 아시안이 있으면 이런 유의 농담을 하지 않겠다. (점입가경일세)

     

    뭔가 포인트가 한참 잘못되었다. 내가 기분이 나쁜 게 문제가 아니고, 그 발언이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 내용을 꼭 전하고 싶었다.

     

    필자: 내가 그 발언을 들었기에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그 발언 자체가 잘 못 된 게 아닐까? 너네들끼리만 있을 때에도 그러한 발언을 자제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A: 흠 글쎄, 사실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아. 나는 그런 류의 농담(인종차별, 성차별이다.)을 자주 하곤 하는데, 이 농담을 해서 누가 웃는지 안 웃는지 보면 내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 다른 사람이 내 유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상관 안 해
    필자:...(말잇못)
    A: 그리고 나는 가끔 본인들(유럽인, 남성)이 화를 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어. 자기에 대해서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왜 대체 화를 내는 거지?
    필자: 그 친구들이 생각하기에는 그 발언이 굉장히 구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사회에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차별과 편견이 많지. 그리고 너의 유머는 그 차별을 더 조장하고. 웃지 않는 친구들은 그런 유머가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라고 믿기에 웃지 않는 것이 아닐까?
    A: 흠 그런가. 그냥 농담인데 그냥 웃어서 넘기면 안 되나?

     

    * 그 친구를 희화화하는 말을 해서 역지사지를 통하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심지어 유럽 국가에 사는 백인 남성에 영어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필자: 너야 백인 남성이고 주류니까 그리고 너의 비눗방울에 살고 있으니까. 만약 네가 유색인종 여성에 성소수자 라면 과연 그래도 네가 그런 유머를 웃어넘길 수 있을까?
    A: 그렇군. 흠...
    필자: 그리고 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불법인 것 알고 있어? N word 사용해?
    A: 아니...
    필자: 왜? 그건 처벌받으니까? (A의 출신 국가에도 인종차별법이 있고, 동양인에 대한 비하를 할 경우 500~1000€ 의 벌금을 내야 한다.)
    A: 그걸 들으면 흑인들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변하는지 아니까.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이건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으니까. 나는 근데 이 사회에서 유색인종과 여성들이 어떤 차별을 당하는지를 알 수가 없어. 내 주변에 없으니까. 그리고 누가 그걸 알려주지 않으니까.

    대충 이 정도의 대화가 오고 간 후 거나하게 취한 새로운 친구가 우리 둘 사이에 앉아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상당히 화가 많이 나는 대화였지만,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아쉽게도 원하는 만큼 성공적으로 그 친구를 설득하진 못하 것 같다. 그러나 상당히 배운 것이 많은 대화였다.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어 A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모든 내용을 거의 다 메모했다.

     

    내 머릿속의 질문은 간단했다. 어떻게 차별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할 것인가?

     

    단순하게 그것이 나쁘니까.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으니까.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조금 더 와 닿게 설득하고 싶다.

     

    차별은 악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면, 조금 더 마음에서 비롯되어 행동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으로 입장 바꿔 생각하기.

     

    항상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기회는 잘 없다.

     

    A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A는 어렸을 때부터 오직 백인들에게서만 둘러싸여 자랐다. 가끔 유색인종을 보긴 했지만 딱히 친구가 된 적은 없다. A의 친구들 집단 사이에서는 아시아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유머가 특별하지 않다. 항상 그 유머에는 웃어왔다. 물론 인종차별은 나쁘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나(A)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비눗방울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화가 좀 덜 난다. 나름대로 이해는 된다. 자신의 유머에 기분이 나쁠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자신의 비눗방울 안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친구가 조금 더 차별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남성이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유색인종이 겪는 차별을 백인이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성소수자가 겪는 편견을 이성애자가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빈곤자가 겪는 고통을 부자가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갈등이 심하다. 나는 사실 남성이기에 여성이 겪는 차별들을 많이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아시아인으로서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이런저런 차별을 당해보니 정말 차별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나니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간접적으로 공감하며 함께 분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곳에서도 주류이기 때문에 차별을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 깊은 속에서 차별을 나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 혼자는 답을 못하겠다. 어렵다.

     

    그 상황 속에서 대응하는 법, 혹은 그 사람의 차별의 경험에 대입시켜 공감하게 하는 법은 알겠다.

     

    그러나 대응이 아닌 설득을 하고 싶다. 너도 언젠가 약자가 된 적이 있거나 될 수 있으니 차별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취약점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얻어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전반적인 인류애로 한 인간을 설득하고 싶다.

     

    너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서로를 존중하는 조금 더 따듯한 세상이지 않냐는 그런 조금은 답답한 말로 설득하고 싶다. 논리가 아닌 가슴으로 누군가를 설득해보고 싶다.

     


     

    이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글을 읽고 쓰겠다. 혹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한다면, 함께 이 질문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어떤 곳에서도 주류이기 때문에 차별을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 깊은 속에서 차별을 나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질문을 생각하다 단계를 밟으면, 내게 조금 귀띔해 주면 좋겠다. 나 역시 혹시라도 단계를 밟으면 글을 통해 귀띔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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